2026 병오년 고소미 작가 개인전
<종이와 직물의 집>
· 전시일정 : 2026.1.13~2026.1.20(13~14일 희녹 행사)
· 운영시간 : 11:00 ~ 17:00 (18일(월) 휴관)
· 장소 : 서울 종로구 가회동 145 레이어 한옥 아뜰리에
깊고 새로운 미감, 고소미 작가의 세계
#장면1
해가 바뀌었으니 벌써 작년 봄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북촌에 새로운 스테이가 생겨 가 볼 일이 있었습니다. 문 손잡이, 부엌 그릇장, 수건 걸이 하나까지 공예 작가들의 손길이 더해진 아름다운 공간이었지요. 그곳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이 한지로 만든 창호문이었습니다. 깨끗하게 바른 한지문은 그 자체로 정연하고 영롱한 빛의 공간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 창호문은 신선한 아름다움까지 더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세로로 긴 한지를 붙이고 그 위에 다시 한지로 작은 꽃 모양을 접어 박음질한 작품. 살포시 올라온 양감과 질서 있게 배치된 종이꽃이 내소사의 꽃살문을 연상케 할 만큼 고왔습니다. 작가 이름을 눈 여겨 봤고 ‘고소미’ 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장면2
전북 부안에 <파란곳간>이란 스테이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파란 곳간 두 곳을 건축가 조병수와 함께 스테이로 바꾼 곳이지요. 밤이면 건물 외관에 연극 무대 같은 조명이 조용히 들어오고 단열재 역할을 하는 세척한 볏짚이 방 안에 이색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문을 열면 노천탕이 있고 그 너머로 드넓은 땅이 펼쳐지는데 시야를 막는 것이 없어 시원하고도 큰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커튼. 색도 깊고 질감도 적당히 두터워 조병수 건축가의 재생 건축과 한 몸처럼 어우러지는 모습이 근사하더군요. 이 커튼 역시 고소미 작가의 작품으로 작가는 한지와 삼베를 한 땀 한 땀 직조해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한지와 삼베로 만든 커튼은 그 자체로 벽에 걸린 자연이었습니다. 깊은 온화함과 푸근함을 갖고 있는. 조병수 건축가는 이 작업을 계기로 그녀와 많은 작업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오는 5월, 런던에서 하는 전시에도 함께하지요. 마스터의 눈이 반짝이는 것이 보입니다. 조병수 건축가가 40년 가까이 줄곧 천착하는 것이 땅과 흙, 그리고 손의 생명력이거든요.
#장면3
이번 전시의 일등 공신은 희녹의 박소희 대표입니다. 감식안이 있는 그녀는 꼭 한 번 만나보면 좋을 분이 있다며 저를 고소미 작가의 작업실로 데려갔지요. 구로에 있는 작가님의 아틀리에는 그야말로 연구실이자 실험실이었습니다. 닥나무 섬유질로 한지를 직접 뜨는 작업실과 염색 공간까지 갖추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업도 다채롭더군요. 한지와 삼베, 리넨과 실크를 포함해 다양한 한국의 로컬 원단으로 만든 창문 가리개부터 조명과 벽 오브제를 넘어 의상실에서나 볼 법한 쪽빛 작업복까지. 한쪽에는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직물 원단들이 만석꾼의 곳간처럼 한가득 쌓여 있었지요. 그녀는 ‘소미사’라고 명명한 본인의 실까지 갖고 있습니다. 한지에 풀을 먹여 조심조심 물레를 돌려 한 가닥씩 뽑아냅니다. 작업실에서 그녀의 일을 찬찬히 둘러본 후 저도 확신이 들었습니다.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겠다는. 전시를 하면 보람이 있겠다는.
About 고소미 작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동양화를 전공했습니다. 직물을 이용한 ‘회화’작업까지 병행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녀는 그때부터 ‘물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종이 위에 바람을 그렸는데 바람의 느낌이 나지 않고 종이가 바람처럼 떠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에 종이 강국인 일본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타마미술대학에 재학하다 훗날 인생의 큰 스승이 된 다나카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무사시노 미술대학으로 적을 옮기지요. 도야마현 고카야마의 화지마을에서도 현장 경험을 쌓았습니다. 물성 탐구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이루어졌고 양국에서 그녀는 과학자이자 화학자였습니다. 현미경으로 한지를 들여다보면서 섬유질 연구를 하고 화지와 한지를 나란히 놓고 시간과 농도, 온도와 매염제에 따라 천연 염색한 종이의 빛깔과 어떻게 달라지는지 색차 분석 실험을 했습니다. 분자요리를 개발한 세계 최고의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는 “독창적인 요리를 창조하려면 지식이 필요하다. 과학도 지식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녀의 연구 궤적을 보면 이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렇게 물성을 완벽하게 이해한 그녀는 직물 본연의 장점과 아름다움이 두드러지면서도 구조적으로나 형태적으로 참신하고 독창적 작품을 만들어 나갑니다.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는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몸짓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지요. 한지 조명과 삼베 가리개를 포함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법으로 빛나는 그녀의 작업 세계를 지금 만나 보세요.
글 정성갑(갤러리 <클립> 대표 | <건축가가지은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