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DONG WOOk SOLO EXHIBITION
<감각의 경험>
· 전시일정 : 2025.07.16 ~ 2025.07.23
· 운영시간 : 11:00 ~ 17:00 / 일,월요일 휴무
· 장소 : 메타포서울
김동욱 작가와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5년 전이다. 우연히 옥인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가게 되고, 그 안에 그득 쌓여 있는 그림들을 보면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작은 그림이 50호, 거실 센터 피스에 걸면 좋을 100호 사이즈의 그림이 많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감정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짓눌리는 부분이 많으면 그런 크기의 그림은 쉽게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자유로움이었다. 여느 추상화 작품들에서 만나는 묵직한 주제와 전위적 매체 실험에서 벗어나 그저 색채의 감정과 아름다움만으로 완성된 작품들. 어떤 그림은 선의 춤으로 끝났고 또 어떤 그림은 면의 중첩으로 이어졌는데 저마다 각자의 표정과 에너지가 있었다. 홀로 나는 새의 비행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김동욱 작가에게 그런 그림의 내용과 뿌리를 자주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제가 본 색, 제가 지나온 계절, 그 사이사이 풍경과 온도의 변화에서 느낀 감정들을 새로운 그림과 이미지로 구현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 결과는 은유적이고 입체적이다. 봄이라고 그린, 여름이라서 블루가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희망과 설레임, 불안과 해방감, 텅 빈 무無와 꽉 찬 유有가 각각의 계절마다 리드미컬하게 어우러진다. 매년 반복되는 계절을 맞이하다 보면 하나의 계절에도 다양한 표정과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여름 속에 있다고 치자. 그 안에는 팽창하는 열기도 있지만 지쳐 스러지는 쇠락의 기운도 동시에 있다. 쨍한 블루도 있지만 핑크빛과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하늘도 있다. 계절은 순간이 아닌 연속이고 김동욱 작가는 그 흐름을 타며 그저 그림으로만 표현되어질 수 있는 창의적이고 유기적인 작품을 완성하고 싶어한다.
“변화하는 자연의 풍경, 그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색깔들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여름의 색, 가을에는 가을의 색이 있지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색들이 스스로 긴 잠에 빠져들 듯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문득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심코 창 밖을 보는데 햇살이 바뀌고 있다던지, 작업실 앞에 있는 나뭇잎의 컬러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던지…그런 순간을 볼 때 마음에 작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계절의 흐름이 느껴지고 그에 맞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 자신도 보게 됩니다. 그렇게 계절마다 색이 바뀌고 물감의 두께와 농도가 달라집니다. 햇볕이 늦은 시간까지 길게 들어오는 계절을 좋아합니다.”
그와 작년에 나눈 대화다. 이런 감정은 계속 바뀐다. 사람도 자연이라면 그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다. 생각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예전에는 다른 생각이 침범해 들어와 최초의 순도를 망치기 전에 붓을 놨다. 더 붙잡고 있다 더 그리는 그림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조금 다르다. 붓을 놨다가도 놓친 기억과 색깔, 붙잡고 싶은 그날의 분위기가 떠오르면 다시 붓을 잡는다. 그렇게 더 오랜 시간이 담긴 그림을 그린다. 예전의 그림이 시나 수필이라면 요즘의 그림은 단편이나 중편 소설이랄까. 가끔 장편 소설도 그린다.
“여전히 산책은 항상이고 음악을 많이 찾아 듣고 있어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지요. 대체로 가사 없이, 조용한 흐름으로 이루어진 음악입니다. 그 안에 존재하는 감정은 격렬하지만 소리의 질서 속에서 숨처럼 흘러가는 음악이 많지요. 막스 리히터Max Richter와 닐스 프람Nils Frahm의 음악을 특히 자주 듣습니다. 예전에는 생생한 색과 몸으로 발화되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강렬하니까요. 요즘엔 다릅니다. 발화된 것들은 휘발되고 더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나간 자리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번에 끝나던 작업들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더 집중해 작업하는 그림이 많아졌습니다.”
오랫동안 봐 오건데, 김동욱 작가는 ‘심플한’ 사람이다. 그림 그리는 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그림으로 옮겨질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루키의 소설 속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같기도 하다. 대단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지 않고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위해 움직인다. 즐기던 술도 끊고 최근에는 더 단순하게 산다.
“하루의 루틴은 예전처럼 매우 단순해요. 아침에 일어나 작업을 하고, 정리를 합니다. 점심을 먹고 운동을 갔다 와 다시 작업을 하고 저녁이 오고 날이 어두워 지면 작업을 멈춥니다. 갑작스러운 일 때문에 루틴이 깨질 때도 있지만 최대한 고수하고 있어요.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운동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거예요. 체력이 저조해지면 괜히 자책과 비판의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생각의 루프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 중입니다. 첫 개인전을 연 때가 2015년이었으니 벌써 10년이 흘렀네요.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습니다. 매일 무언가 작업을 하며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따금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거든요. 오늘 하루도 잘 살아보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김미연 대표님을 포함한 아엘시즌 팀이 베딩 프로젝트를 제안했을 때 참 잘 어울리는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포개고, 접고, 덮고 자는 것들에 들어가는 그림이 유순하게 정리되고 가라앉지 않은 채 제 자체의 온도로 거칠거나 날카로우면 별로니까. 김동욱 작가의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인 그림이 집안의 벽을 넘어 해변의 낮과 밤, 차 안의 낮과 밤, 침실의 낮과 밤으로까지 확장되면 좋겠다. 그렇게 그의 남다른 감각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글 정성갑(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