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꽃밭에 선 새벽 여행자〉

Kim Ran

층층의 레이어로 기쁜 김란의 꽃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존재 중 하나가 꽃이다. 어쩌면 화폭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생명체도 꽃일테다. 놀라운 건 누구의 연인도 될 수 있는 그 꽃이 화가의 손끝에서 저마다 다른 각자의 얼굴과 세계를 만들어 낸다는 거다. 김종학의 꽃은 설악의 생명력을 힘껏 품고 있고 알렉스 카츠의 꽃은 대범하면서도 우아하다. 김란 작가의 꽃은 어떨까? 커다란 캔버스에 큼직한 꽃송이들을 과감하게 펼쳐 놓은 그림들은 한껏 물이 오르고 환한 기운이 넘실대는 기쁨의 세상 같다. 이 그림을 보고 마음이 맑게 개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시일정 : 2024.05.29 - 06.05

장소 : 강남구 자곡로7길 16-2 연이재 301호


* 전시 첫날, 둘째날은 프리 오픈이고, 나머지 일정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합니다. 월요일은 휴관.
* 사전 예약은 정성갑 대표 인스타그램 @clip_seoul 을 통해 해 주세요.
* 운영시간은 11시~5시

그림을 포함한 문학과 공연, 음악과 건축은 층층의 레이어를 갖고 있을 때 비로소 어떤 깊이를 갖게 된다. 그저 형태의 구현에 머무르는 작품은 어떤 색채도 품지 못한다. 김란 작가에게 꽃은 수많은 기억과 풍경, 시간과 계절의 레이어를 그리며 존재한다. 양평에서 분재원을 하는 어머니의 인생 덕분이라도 어릴 적 그녀의 집에는 꽃과 나무가 그득했다. 이쪽으로 돌아서면 장미넝쿨이 있었고 또 한쪽으로 방향을 틀면 라일락과 철쭉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감나무도 있었고 철쭉도 있었다. 봄과 여름이면 산수유와 라일락, 장미와 목수국이 축제하듯 피어나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이뤄 꽃 구경을 왔다. 겨울은 그녀가 꽃과 나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계절이다. 엄마를 도와 화분을 집 안으로 옮기면서 훌쩍 가까워진 거리에서 잎맥과 몸체를 봤다. 그런 세월 덕분에 그녀는 따로 가지치기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언제 어디를 전지해야 하는지 감각으로 안다. 그저 그런 아름다움과 진짜 아름다운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답할 수 있다. 보통 한 존재를 오랫동안 봐 오면 질리는 순간도 찾아오는데 그녀에게 꽃은 예외다. 그리고 싶은 꽃이 여전히 많고 새롭게 반하는 꽃도 계속해서 새로 찾아온다. 아트 출판사 <파이돈>에서 나온 는 그녀가 가장 자주 들여다보는 책 중 하나. 최근에는 올망졸망 앙증맞은 꽃이 작은 종처럼 매달리는 프리틸라리아Fritillaria에 빠져 이 꽃이 있는 정원을 찾아 다녔다.


그녀가 일구는 꽃의 세계에 함께 들어와 있는 건 시詩다. 준과 솔, 찬과 결(모두 외자로 그녀는 네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네 남아가 깨기 전 새벽녘에 가장 먼저 하는 것도 시를 읽는 것이고 응가를 한 후 마치 프로그램이 입력된 것처럼 아빠를 찾아가는 막내를 보면서도 시를 쓴다. 책상에는 베스와바 심보르스카와 메릴 올리버의 시집이 늘 올라가 있는데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페이지가 부지기수다. 적힌 문장보다 훨씬 더 큰 여운의 세계를 떠다니다 보면 육아의 고단함이 스스로 사라지고 다시 설레고 순수해진 마음이 찾아든다.   

 

그렇게 시로 충만해진 기분이 루틴처럼 향하는 곳은 화폭이다. 시에서 느낀 자유와 황홀이 구도와 색채, 그리고 형태에 숨처럼 녹아 들어간다. 시집에서 읽은 어떤 글귀는 너무 좋아 유화로 그린 그림 한 켠에 따로 적기도 한다. 손으로 문지르듯 물감을 밀어내 요철을 만들고 입체감 가득한 모습을 상상하며 붓과 연필로 꽃의 수술을 올리기도 한다. 화폭 가득 큼직한 꽃이 한가득인 그림도 많은데 이렇게 꽃을 크게 그리는 이유는 마치 꽃 속에 파묻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라고. 꽃 속에서 수영을 하는 기분이랄까. 그 안에서라면 힐링하고 치유 받고 여행하는 모든 기쁨이 다 살아날 것만 같다. 그녀의 꽃에는 길고 많은 시간이 담겨 있다. 한 순간 반해 그린 그림은 없다. 싱싱할 때부터 시들시들 때 마디마디를 사진으로 찍어 갖고 있다 계속해서 마음을 흔드는 꽃과 그 꽃이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일 때를 밀도 높게 담아낸다. 튤립으로 치면(그녀의 말에 따르면 “우아한데 힙하기까지 한 것이 튤립”이라고) 생생했던 꽃잎이 살짝 시들고 작아질 때. 그 안에서 한층 성숙해진 매력과 세계를 본다. 꽃을 향한 깊은 애정과 종교처럼 의탁하는 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마음과 오래 들여다 본 시간에서 시작한 그림. 이 층층의 레이어로 독창적인 김란의 그림과 직접 마주하시길.  


그녀의 꽃에는 길고 많은 시간이 담겨 있다. 한 순간 반해 그린 그림은 없다. 싱싱할 때부터 시들시들 때 마디마디를 사진으로 찍어 갖고 있다 계속해서 마음을 흔드는 꽃과 그 꽃이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일 때를 밀도 높게 담아낸다. 튤립으로 치면(그녀의 말에 따르면 “우아한데 힙하기까지 한 것이 튤립”이라고) 생생했던 꽃잎이 살짝 시들고 작아질 때. 그 안에서 한층 성숙해진 매력과 세계를 본다. 


꽃을 향한 깊은 애정과 종교처럼 의탁하는 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마음과 오래 들여다 본 시간에서 시작한 그림. 이 층층의 레이어로 독창적인 김란의 그림과 직접 마주하시길.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작품 소개 

무지개빛 어떤 글, #1 분홍, Oil and pencil on paper, 29.7 x 21 cm / frame 35 x 44 cm

무지개빛 어떤 글, #2 하늘빛, Oil and pencil on paper, 29.7 x 21 cm / frame 35 x 44 cm


무지개빛 어떤 글, #3 노랑, Oil and pencil on paper, 29.7 x 21 cm / frame 35 x 44 cm


무지개빛 어떤 글, #6 마리루즈, Oil and pencil on paper, 29.7 x 21 cm / frame 35 x 44 cm


무지개빛 어떤 글, #8 초록, Oil and pencil on paper, 29.7 x 21 cm / frame 35 x 44 cm


무지개빛 어떤 글, #9 노을빛, Oil and pencil on paper, 29.7 x 21 cm / frame 35 x 44 cm

작은 책 안에서 in a little book, Oil and pencil on paper, 29.7 x 21 cm / frame 35 x 44 cm

오롯이 나를 기억하는 일, Oil and pencil on paper, 29.7 x 21 cm / frame 35 x 44 cm

무지개빛 어떤 글, #4 물빛, Oil and pencil on paper, 29.7 x 21 cm / frame 35 x 44 cm


꽃이 만발한 그녀로부터, Oil and pencil on paper, 21.5 x 16 cm / frame 39 x 3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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