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화가 정대수 개인전
〈파리와 근교에서〉



· 전시일정 : 2024.10.22~10.29(월요일 휴관)

· 운영시간 : 오전 11시~오후 5시

· 장소 : 타포서울 (서울 종로구 삼청로 140-1 2층)

“2001년에 처음 파리에 갔어요. 세상 구경하러 갔어요. 대단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 원래는 미국을 가고 싶었는데 미국에 갔던 친구나 선배들이 그림을 안 그리더라고요. 이상한 일을 하고 있고. 저곳에 가면 내가 해체되겠구나 싶어 망설이다가 프랑스로 가게 됐죠. 원래는 40세 이전에 더 일찍 가기로 했는데 집에 어른이 편찮으셔서 못 가고 있다가 마음을 먹은 거죠. 모든 게 준비가 된 상태로 가게 된 것도 아니었어요. 800만 원 들고 갔거든요. 낭트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후배가 있어서 일단 그쪽으로 갔지요. 10개월간 머물면서 어학도 하고 그랬는데 돈이 금방 바닥나더라고요. 한국에 제 그림을 보관하고 있던 친구가 그림을 중간중간 팔아 돈을 보내줬어요. 낭트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도시로 나가보고 싶었어요. 너무 한가하니 안 되겠더라고요. 라데팡스 지역으로 가서 2년을 있다 또 15구로 들어갔어요. 이사를 다닐 때마다 집 크기는 점점 줄었습니다. 지금은 16구로 들어왔는데 에펠탑이 보이는 좋은 동네예요. 사람들이 ‘뷰맛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부자 동네에 가난한 사람이 사는 겁니다. 그런 집에는 하인도 있고 가정부도 많고 그렇잖아요. 이곳에서는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어요. 언제나 늘 조용해요. 종일 있어도 별 다른 소리가 안 나요. 작업실은 차로 15분 거리에 있어요. 그곳에서 그리다 돌아오지요. 매일이 그렇게 단순해요. 조용하게 살고 있어요. 그런 삶 덕분에 프랑스에서 20년 넘게 살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이 번다하지 않고 아무런 방해도 없으니까. 내 속에서만 머무르는데 시간이 금방 지나가요. 그런 삶이 지금은 익숙합니다.” 

그의 말에는 허위나 과장이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하는 말이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림에도 그런 성품이 고스란히 담긴다. 조용하고 평온한 그림들…그 어떤 바다와 들판, 생기 넘치는 여행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모든 몸체가 부서져 안개처럼 뿌예 지는데 그런 잔상을 옅은 채색의 그림으로 보는 듯 하다. 그런 그림이 주는 것들은 어쩌면 소소한 것들이다. 저건 구름일까? 저건 하늘일까? 저기는 프랑스의 어디쯤일까? 추상에서 구상을 찾고 평온한 채로 가만 바라본다. 그의 그림에 없는 것이 있다면 ‘주장’이다.


내 그림 앞에서 잠시나마 나태해질 수 있기를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거칠고 격하고 그런 성격인 줄 알았어요. 표현도 강하게 하고. 아니었어요. 가만 내 성향을 들여다보니까 조용한 걸 좋아해요. 잠잠하고 정적이고. 원래 그런 성향이니 이쪽으로 오게 됐겠지요. 그걸 알게 된 후로는 그림도 휴식하듯 그려야겠다 생각해요. 내가 그리면서도 나를 쉬게 하듯이…누군가 내 그림 앞에 서면 잠시나마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생각과 잡념이 텅 비워지는 것 까지는 욕심이라 꿈꾸지 못할 것 같고 멍하게 쳐다보면서 ‘저게 그림이구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많은 말을 하고, 대변을 하는 그림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으니 저는 그저 계속해서 ‘게으른’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니예요. 저의 이런 그림도 하나의 ‘장르’가 되고 싶어요.” 특정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다른 작가의 이름을 떠오르는 건 실례지만 나는 정대수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모네를 포함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떠올렸다. 찬란한 볕이 그림 속에 들어있지 않지만 캔버스 안으로 깊이 들어간 집중의 시간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고전적 아름다움이 있었다. 좋았다가 또 금세 싫어지는, 유효기간이 짧은 그림이 아니라 오래도록 편안하게 좋을 것만 같은 그림.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는 아카데믹한 교육을 받았어요. 우리를 가르친 분들의 스타일이 제 그림에도 찌꺼기처럼 남아있겠지요.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붓칠을 하고 스케치를 하고 완성을 시키는 나름의 순서가 있어요. 먼저 밑색을 정성껏 올리겠지요. 그 위에 대략의 스케치를 할 거고요. 누군가는 밝은 색을 먼저 올리고 또 누군가는 나무를 먼저 그리고나서 주변 풍경을 완성시키겠지요. 지금은 밑칠을 안 하거나 액션 페인팅처럼 거칠게 붓칠을 하거나 개념으로 승부를 보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그때는 한 단계 한 단계 정성 들여 순서를 지켰어요. 저에게도 그런 습관 같은 게 있어요. 유화에는 기름이 들어 있잖아요. 캔버스에 잘 스며들어가야 하니까 밑색을 잘 올려야 해요. 그렇게 밑색이 밀도 높게 쌓여야만 발색이 잘 나오거든요. 완성된 작업도 오래가고요. 때문에 밑칠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계속 해요.” 만약 당신이 그의 그림을 보며 어떤 그윽함을 느낀다면 그건 캔버스의 맨 아랫 부분에 차분하게 가라앉는 밑색 덕분이기도 하다.

화가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그 그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가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많은 것들이 그림 안에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이다. “세상의 빛깔, 자연이 빚어내는 경외로운 순간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걸 좋아해요.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하다 저 멀리서 동이 터오르며 세상이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 때가 특히 아름답지요. 해가 뜰 듯 말듯, 주황색과 노란색, 흰색과 빨간색을 다 갖고 있는 그 때의 색은 참 신비해요. 저번에는 서울에서 친구들이 파리에 놀러 왔어요. 그림 그리는 친구들이었는데 함께 차를 몰아 노르망디 쪽으로 갔어요. 완전히 시골이라 지평선만 아득하게 펼쳐진 그곳에서 함께 일출을 보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저 역시 같은 마음이었어요. 볼 때마다 신기하고 감격스러워요. 한없이 웅장하지만 한없이 고요하고 엄청 느린 것 같지만 엄청 빠르고, 숨을 멈추고 바라볼 만큼 정적이지만 그 안에 어떤 격한 것이 숨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고.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의 이 말도 기억에 남는다. “그림은 화가의 인생 수업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어요. 그 수업의 내용 위에 상상력이 더해지고 자유가 더해지는 거죠.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프랑스에서 24년,
파리와 그 근교에서 그린 그림들 

프랑스에서 벌써 24년. 그는 타국의 삶이 익숙하고 편하다는데도 바보 같이 계속 외롭지 않느냐고 물었다. “외롭지요. 매일 매시간 외롭지 않은 순간이 없어요. 살다 보면 이야기를 할 사람이 격렬히 그리울 때가 있어요.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1~2시간 가만 있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이곳에는 없으니 외롭지요. 아마 남들이 쳐다보면 온몸에서 외로움이 뚝뚝 흐를 거예요(웃음). 하지만 파리와 작업실을 못 떠나요.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매순간 의식하지는 않지만 그곳이 제 인생이고 저 자체인 거예요. 매일 그림만 그리며 살진 않지요. 그냥 조용하게 있을 때가 많아요. 글 쓰는 사람들은 공필한다고 하잖아요. 허공에 글을 쓰면서 구조도 짜고 줄거리도 풀어내 보는 거죠. 저도 똑같아요. 무언가를 허공에 그려보는 그런 시간이 없으면 막상 캔버스 앞에 앉았을 때 작업을 못 해요. 머릿속에 분명한 것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무엇을 그리냐고 하면 남들은 말을 고상하게 잘하던데 저는 달리 별 말을 못하겠어요. 떨어져 있다 보니 사회적으로 좀 퇴보가 된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의 소소한 취미는 그릇 모으기. “어느 순간 보니 제가 접시를 모으고 있더라고요 백화점이라든가 세컨핸드마켓에 가면 접시를 하나씩 사고 주방기구가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사람들이 “왜, 접시가 필요해요?” 하고 묻는데 그건 아니에요. 그냥 접시가 이쁘고 재미있어서 하나씩 사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산 것들도 제 수중에 없어요. 다 나눠줘 버리거든요. ”이쁘지? 할래?” 하고 그렇다고 하면 그냥 줘요(웃음). 그렇게 다 줘버리고 나니 이제 두세 개 남은 것 같더라고요. 소유욕이 없진 않은데 10번 정도 집을 옮기고 이사를 할 때마다 공간이 줄어드니 살림살이도 축소를 해야 했어요. 막상 필요한 것도 별로 없고. 어른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물건을 정리하고 싶어 하는데 어떤 마음인 지 알겠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인생의 회환은 없는 지 물었다. “회환을 이야기하려면 부끄러워서 이야기 못 해요. 그걸 또 다 꺼내 놓을 필요가 없고. 남들이 봤을 땐 100번 후회해야 할 상황이지요. 결혼 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를 부모님이 그렇게 바랐는데 이뤄 드리지도 못했으니 죄스럽고요.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고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일 뿐 회환과 후회라 자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너무 슬프잖아요.” 


많은 생각과 기억을 마음 속 깊이 내려둔 채 그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어느 날은 평소 가장 좋아하는 노르망디로 2~3시간 차를 몰아 달릴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노르망디는 날씨가 불손하다. 좋을 때는 좋은데 계절이 바뀔 때는 금세 비바람이 치고 해가 보였다 말았다 한다. 북해와 면한 곳이라 바람도 세다. 하늘이 캔버스라면 노르망디의 그것엔 모든 드라마틱한 모습과 색이 다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경치가 좋고 들판이 아름답다. 덕분에 화가가 많이 탄생한 것 아닌가 싶다. 모네도 이곳 출신이다. 언덕배기나 들판에 잠시 차를 세워 놓고 광활하게 펼쳐진 자연을 가만 바라보는 것은 정대수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글 ·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나는 대상의 형태를 그리려고 하지 않는다.
어느 특정 공간을 재현하려는 행위는 나의 관심 밖에 있다.
내가 반응할 수 있는 대상을 뭉치고 불려서 다시 분해한다.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색점의 덩어리로 만들고 그것을 자연의 핵으로 삼는다.


 그 핵은 마치 세포같이 불어나서 형상을 이루고 또 해체되어 다시 본질로 돌아간다.
물과 같이, 공기와 같이 나의 화면 위에서 흐른다.
 나는 그 생명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나의 그림은 거칠고 명백하지 않은 붓질 속에서 흐름을 찾고 질서를 찾고 균형을 찾아내며
또 파괴하는 과정을 거쳐 에너지의 흐름을 극대화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은 자연 속의 생명을 생성하는 에너지이며

나는 에너지의 정원을 소요하는 산책가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활동 국가 : 프랑스
해외 활동 기간 : 2001~현재

개인전
2023 갤러리 낙산, 서울, 한국
2022 갤러리 아인, 서울, 한국
2017 Love2 Arts Gallery, 앤트워프, 벨기에
2013 Galerie Mou vances, 파리, 프랑스
2011 종로갤러리, 서울, 한국
2010 Galerie Mou vances, 파리, 프랑스
2009 Love2 Arts Gallery, 앤트워프, 벨기에
2008 Love2 Arts Gallery, 앤트워프, 벨기에
2008 코발트 국제갤러리, 브뤼셀, 벨기에
2007 Love2 Arts Gallery, 앤트워프, 벨기에
2003 미술관, 낭트, 프랑스
2001 이목갤러리, 서울, 한국
1999 조선화랑, 서울, 한국
1993 세종갤러리, 서울, 한국

단체 전시회
2023 갤러리 U.H.M 서울,한국
2022 SONAMOU 전시회, 서울, 한국
2021 한국문화원, 파리, 프랑스
2021 SONAMOU 전시 24 Galerie Beaubourg, 파리, 프랑스
2021 OKAA Art Showbauhaus Gallery CA, 캘리포니아, 미국
2019 SONAMOU 전시회, 파리, 프랑스
2018 브뤼셀 아트페어, 브뤼셀, 벨기에
2017 SONAMOU 바스티유 디자인 센터 전시, 파리, 프랑스
2016 베를린 아트페어, 베를린, 독일
2016 파리 2차 현대미술페어, 파리, 프랑스
2014 베를린 아트페어, 베를린, 독일
2014 Cité International des Arts, 파리, 프랑스
2013 La Fabrique Gallery, Ivry sur Seine, 프랑스
2013 Love2 Arts Gallery, 앤트워프, 벨기에
2012 Le trait d'union Galerie89, 파리, 프랑스
2012 Kun Start12, 볼차노, 이탈리아
2011 한국작가 특별전, 파리, 프랑스
2011 서울아트페어 KIAF, 서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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