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미, 윤태인 작가 2인전
<시작하는 그림과 가구>
· 전시일정 : 2025.04.11~ 04.18(일, 월 휴관)
· 운영시간 : 오전 11시~오후 5시
· 장소 : 서울 종로구 북촌로 7길 3-8 레이어한옥
김하나미 작가의 산과 흙
유년 시절에 보고, 느낀 것은 우리 마음에 그대로 남아 어떻게든 되살아 납니다. 특히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이 고스란히 창작의 연료가 되는 예술가들에게 과거는 그 혹은 그녀를 나 자신이도록 하는 독자적이고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김하나미 작가는 싱가포르에서 살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컬러는 이국의 그것처럼 화사하고 생동감이 넘칩니다. 언뜻 봐서는 한국과의 연계성을 찾아보기 힘들지요.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극히 한국적입니다. 빨갛고, 파랗고, 희고, 노란 캔버스에 겹겹이 올라간 산. 같은 계열의 색으로 바탕을 여러 번 칠한 후 최종적으로 산이 올라간 캔버스를 보면 첩첩산중의 색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빨간색이나 흰색, 파란색 처럼 주조색을 따로 정하고 작업하는 방식이라 빨간색 산에서는 활활 타는 단풍과 노을 지는 바위가, 흰색 산에서는 펑펑 눈 쏟아진 설국의 숲이, 파란색 산에서는 맑고 깨끗한 하늘이 보이지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런저런 컬러가 낙엽에 가린 새싹처럼 설핏 고개를 내밉니다. 이렇게 여러 색이 보이는 건 작업 방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바탕색을 올린 후 산 모양으로 자른 작은 나무를 캔버스에 대고 일일이 찍으면서 기존의 색을 떼어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이지요. 정성껏 첫 산을 찍고, 나무판에 묻어 나온 컬러를 닦고 다시 찍고, 그렇게 몇 시간을 계속 찍어 나가며 작은 산이 굽이치는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 그녀가 “중노동”이라 말하는 이유이지요.
또 다른 시리즈는 ‘흙’입니다. 극히 모던한 얼굴이지만 자세히 보면 황톳길의 정서가 떠오르는 작품이지요. 작가는 싱가포르에서 공수한 전주 한지로 작업하는데 재질이 장판지로 쓸 만큼 두껍고 질깁니다. 작가는 캔버스 크기에 맞춰 이 한지를 잘라 앞면과 뒷면을 일일이 태워가며 캔버스에 붙여 나갑니다. 앞에서 장판지를 태우면 희미하게 둥근 무늬가 생기고 뒤에서 태우면 한지의 테두리를 따라 타 들어간 불길이 검은 그을음처럼 남지요. 이렇게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 옛날 장판지에 묻혀 있을 수많은 시간과 기억의 축적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경북 영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엄마가 바빴던 탓에 자연 속에서 혼자 놀던 때가 많았습니다. 논두렁에 앉아 있기도 하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버스를 쫓으며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지랑이와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산이 가깝게도, 멀리도 보였지요. 벽촌이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가을이면 황금 들판이 펼쳐졌고 겨울에는 설국이 되었습니다. 봄과 여름이면 연둣빛 초록이 진하고 무거운 녹음으로 바뀌었지요. 그런 색이 자주 기억에 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대구로 이사를 왔는데 도시에서의 시간은 잘 기억이 안 나고 영천에서의 시간만 새록합니다. 산과 흙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도 해요. 산을 이루고 있는 게 흙이잖아요. 게다가 흙과 산은 끊임 없이 변화합니다. 멀리서 보면 가만 서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하루하루 색이 바뀌고, 매일 크고 작은 생과 사가 맞물려 돌아가지요. 그렇게 꿈틀거리는 산과 흙의 에너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음영을 포함한 그라데이션도요. 촉촉한 생명의 기운을 전하기 위해 아크릴 대신 유화를 사용합니다. 아크릴은 너무 빨리 말라버려 다음 색을 촉촉히 올리거나 떼어 낼 수가 없거든요.”
유년 시절에 보고, 느낀 것은 우리 마음에 그대로 남아 어떻게든 되살아 납니다. 특히 마음 속의것들이 창작의 연료가 되는 예술가들에게 과거는 그(그녀)를 나 자신이도록 하는 증거가 되지요. 꼭 과거만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도 어쩔 수 없이 나의 정서를 만들지요. 싱가포르로 날아가기 전 홍콩에서도 살았던 그녀의 그림은 밝고 진취적인 본인의 성격을 닮아 화사하고 산뜻합니다. 무엇보다 모던하지요. 단색화라고 하면 무거운 시대, 무거운 노동을 떠올리지만 그런 그림만 단색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난하고 암울했던 시절이 지나간 자리에서 나고 자란 후대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 땅을 기억할 테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작업은 계절처럼 화사하고도 아름다운 단색화를 보여줍니다.
_글 갤러리 클립 정성갑 대표
윤태인 작가의
정겹고 미더운 가구
윤태인 작가의 가구를 처음 본 때는 2024년 오초량 전시를 준비할 때였습니다. 스테인리스를 이용한 건축적 디자인의 가구를 만드는 황형신 작가님 작업실에 갔다가 그와 그의 가구를 만났지요. 윤태인 작가는 그곳에서 황형신 작가를 도와 함께 가구를 만들고 틈틈이 본인의 작업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금속 조명을 보고 첫 눈에 매료돼 바로 전시 출품을 결정했습니다. 은색 알루미늄 캐스팅으로 만든 높이 1m 안쪽의 스탠딩 램프였는데 금속 조명인데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캐스팅을 뜨기 전 뼈대에 점토를 붙이고 그 점토를 손으로 펴 바른 덕분에 손의 흔적이 표면 가득 남아 있었지요. 이런 개성은 다른 작품에도 담겨 있었습니다. 역시 알루미늄 캐스팅으로 뜬 스툴도, 작은 테이블 램프도 마치 아이가 흙을 주물주물해 만든 것처럼 정겨웠지요. 작품들은 오초량 전시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작가님과 1년 후 다시 전시를 하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작가님은 대학에 진학하기 전 목공을 배웠습니다. 지인의 스튜디오에 출퇴근하듯 하며 목가구 만드는 것을 배웠지요. 대학은 잠시 미뤄 둔 숙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하고 싶은 일을 더 빨리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지요. 그러다 곧 한계에 부딪칩니다. 제대로 된 공부가 필요하구나…계원예대 리빙디자인과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강의를 하던 황형신 작가를 만납니다. 윤태인 작가의 다정한 인성과 그만큼 따스한 작업은 곧 황형신 작가의 눈에 띄었습니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낑낑 대며 데이 베드 만드는 윤태인 작가를 봤는데 모든 장비가 구비되어 있는 본인 작업실에서 만들면 이틀이면 끝나겠다 싶어 작업실을 내 줍니다. 그렇게 황형신 작가와 인연을 맺은 윤태인 작가는 그의 곁에서 나무의 재료와 공정, 금속 캐스팅 같은 세부적인 것들을 배우며 차근차근 성장합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한층 성장한 윤태인 작가의 현재를, 그리고 더 탄탄해질 미래를 함께 보게 합니다. 체리나무를 포함해 여러 수종으로 만든 벤치와 데이 베드, 책장과 스툴, 옷장과 수납장 등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은 동글동글 곡선이 강조된 벤치입니다. 반듯반듯 길게 자른 체리나무 목재를 곧은 결이 보이게 재정렬한 후 1차 디자인에 맞춰 상판과 다리를 접목합니다. 지금부터는 곡선의 시간입니다. 그라인더에 금속 날을 끼워 둥글둥글한 형태로 카빙을 하고 샌딩기와 손으로 다시 다듬습니다. 이 작업을 몇 번이고 반복해 하다 보면 지금 보는 것처럼 통통하면서도 기분 좋은 미감이 만들어지지요. 애초에 상판과 다리 부분에 들어가는 목재를 두껍게 만들어 스모 선수가 앉아도 끄덕 없을 만큼 튼튼하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오초량에서 전시를 한 후 1년 간 이런저런 방법을 실험했고 점토 조형 시리즈를 좀 더 발전시켜 보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간결하고 직선적인 작업도 해 봤는데 계속 미련이 남더라고요. 점토로 모델링을 하고 나무를 깎고 캐스팅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울퉁불퉁한 손맛과 라인이 마음에 듭니다. 매끈하고 반듯한 작업을 하면서는 자꾸 갇히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기분도 들지 않았습니다. 할 때마다 다르니까요. 당분간은 좀 더 자유롭고 ‘부드러운’ 작업을 지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옻칠을 가미한 작업도 여럿 출품됩니다. 애쉬로 구조를 짜고 옻칠로 마감한 데이베드가 대표적이지요. 상판과 다리가 맞붙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장력을 유지해야 하는 데이베드 형태의 특성상 상하부의 나뭇결이 반대로 교차되는 경우가 많고 중간 지지대 없이 말끔한 디자인으로 만들려다 보니 양쪽 끝에 추가로 접합하는 목재가 생기는데 이를 가리기 이해서라도 옻칠이 필요했지요. 간결한 디자인과 깊은 색감으로 완성한 데이베드도 눈 여겨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을 <시작하는 그림과 가구>로 지었습니다. 김하나미 작가도 한국에서 첫 번째 전시이고 윤태인 작가도 이번이 첫 전시이지요. 저는 누군가의 첫 전시를 좋아하는데 그 안에는 자발적 기쁨과 의욕이 총총 영혼처럼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요구와 논리가 개입되기 전, 그저 본인이 만들고 싶어 만들어 본 작품들. 그 순수하고 귀한 아름다움을 직접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_글 갤러리 클립 정성갑 대표